synchronized love
don't you be so cruel, synchronized love is what we've got to do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역시 <마이클 K의 삶과 시대>와 마찬가지로 핀터레스트에서 한 페이지를 훔쳐보고 고른 책이었다. 독서노트를 쓰겠다면서 유튜브에서 여러 독서노트 및 필사 유튜버를 통해 <사랑의 역사>를 듣게 된 후에는 책에 대한 기대가 이미 최정상을 찍은 상태였다. '마지막에 울고 말았다' 라는 말이 가장 많았기에 허벌눈물을 자랑하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책인 것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삶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과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작성하며 살아남으려 하는 소녀. 노인은 사랑하는 여자까지 내려놓고 미국으로 망명해 평생을 기다리고, 소녀는 아빠의 죽음으로 천천히 박살나는 엄마의 슬픔을 위로하고자 한다. 서로의 인생에 전혀 접점이 없던 그들이 한 소설을 매개로 가까워지는 것을 확신할 때면 심장이 서늘해진다. 사건 중심이 아닌 다양한 인물을 중심으로 흘러가면서도 가장 큰 매듭을 놓지 않는다. 작가에 의해 짜여진 모든 것들이 서로를 관통할 때는 넘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게 된다.

읽는 내내 영화로만 보았던 9・11을 다룬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과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부부였다고 한다. 제법 신기하다. 시대의 참상을 전시하지 않고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생존자와 아무것도 알지 못할 어린 소년, 소녀로 하여금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이, 그러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아픈 것이.

🏷 날 용서해

111p.

인간의 최초 언어는 손짓이었다. 사람들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이 언어는 전혀 원시적이지 않았으며, 손가락과 손목의 섬세한 뼈를 이용한 무한한 조합의 동작으로 현재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없었다. 손짓 하나하나가 복잡하고 미묘했으며, 그 움직임을 통해 발휘되었던 섬세함은 그때 이후로는 완전히 상실되었다.

침묵의 시대에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더 적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이 했다.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서라도 양손이 잠시도 잠잠할 수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시간은 잠들어 있을 때뿐이었다. (때로는 잠 든 동안에도 말했지만). 언어의 손짓과 삶의 손짓에는 아무런 구분이 없었다.

113p.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나 파티에 있을 때, 혹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당신의 손이 때때로 팔 끝에서 어색하게 늘어진다면 - 그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고, 제 몸의 낯섦을 인식할 때 느껴지는 슬픔에 휩싸인다면 - 그것은 당신의 손이 정신과 육체, 두뇌와 심장, 안과 바깥 등의 구분이 훨씬 희미했던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짓의 언어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말을 하며 손을 움직이는 습관이 그 언어의 잔재다. 손뼉을 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하는 모든 것이 고대의 손짓이 남긴 유물이다. 예를 들어, 서로 손을 잡는 것은 함께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너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는 밤중에는 뜻을 전하기 위해 서로의 몸에 대고 손짓을 할 필요를 느낀다.

인간 최초의 언어는 손짓. 언어는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것. 언어로의 소통. 소통으로서의 언어.

인간과 언어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존재다. 말로서 하는 언어에 대한 체계가 없던 고대에서도 그림을 통해 말을 했고, 그것이 손짓이 되고, 입으로 하는 말이 되고, 쓰는 글자가 된다. 우리가 하는 포옹, 키스 기타 스킨십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사랑해' 라는 또다른 언어적 표현 방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역사> 속 모든 손짓과 행동과 고민과 감정들은 말그대로 사랑인 것이고, 그것을 풀어 쓴 <사랑의 역사>는 저 너머 미지의 존재에게까지 전하기 위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글자인 것이다. <사랑의 역사>는 사랑을 이루는 모든 언어의 총체다.

소설 속에 소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레오가 글을 쓰려 하고, 책을 사랑하고, 앨마의 엄마가 번역을 하는 것은, 어쩌면 언어를 '말'하고 '써'내려가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음을 직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잃은 슬픔에, 상실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발버둥과 같은 것일지도.

🏷 아빠의 텐트

166p.

사람들이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느끼고 싶은 욕망도 커졌다. 이따금 심하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들은 더 많이, 더 깊이 느끼고 싶어했다. 사람들은 감정에 중독되었다. 새로운 감정들을 발견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예술은 바로 이런 식으로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종류의 기쁨이 새로운 종류의 슬픔과 함께 만들어졌다. 예컨대, 있는 그대로의 삶에 대한 영원한 실망, 예상치 못한 유예가 주는 안도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실 무수한 언어는 인간의 감정에 기반하는 것 아닐까. 예술은 바로 이런식으로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예술은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감정을 갈구하고 산다. 인간 삶에서 감정은 생명의 중추. 감정으로 하여금 살아간다. 언어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살아가게 한다면, 감정은 생존 그 자체. 

🏷 널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323p.

간단했다. 내 책을 읽었다면 그애는 진실을 안 것이다.

나는 그애 아버지였다.

그애는 내 아들이었다.

그러자 아이작과 내가 둘 다 살아서 서로의 존재를 알았던 시간이 잠시나마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실로 가서 찬물로 얼굴을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우편물을 확인했다. 내 아들이 죽기 전에 부친 편지가 도착할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우편함에 열쇠를 꽂아 돌렸다.

그렇긴 하지만, 쓰레기 더미, 그게 다였다. , 블루밍 데일스 백화점에서 보낸 잡지, 1979년에 10달러를 보낸 뒤로 내 충실한 동반자로 남아 있는 세계야생동물협회에서 온 편지 한 통. 그것들을 모두 버리려고 위층으로 가져왔다. 쓰레기통 페달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앞면에 내 이름이 타자기로 인쇄된 작은 봉투가 하나 보였다. 내 심장의 아직 살아있는 칠십오 퍼센트가 천둥처럼 울려대기 시작했다. 봉투를 찢어 열었다.

레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지만 이미 1940년대에 죽었을 것이다. 나치 독일에 의해 가족, 집, 돈, 사랑하는 사람과 자식까지 잃게 된 레오. 자식의 존재를 알지만, 가장과 아버지로서의 의무는 다할 수 없다. 자식은 아버지의 존재를 모른다. 그런 상태로 레오는 몸의 죽음마저 앞두고 있다. 레오 거스키가 평생 바라보고 산 것이 성큼성큼 다가올 때,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받을 수 있게 된 순간. 레오의 남은 칠십오 퍼센트의 심장이 천둥처럼 울려대기 시작했을 때, 그 삶의 존재와 죽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받은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 A+L

358.

군인 남편을 기다리는 데 지친 그 아내 때문에 나는 살아남았다. 남자가 건초 밑에 아무것도 없다고 결론짓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건초를 쿡쿡 쑤셔보는 것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이 그렇게 꽉 차 있지 않았다면 나는 발각되었을 것이다. 이따금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여자가 그 미지의 남자에게 키스하려고 처음으로 다가 선 순간 그녀는 그를 향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혹은 그저 외로움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은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 세상 건너편에서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은 재앙의 정반대였다는 것, 그녀가 생각없이 베푼 은혜가 우연히 내 생명을 구했는데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으며 그 또한 사랑의 역사 일부라는 것, 나는 그런 상상을 즐겨한다.

370p.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늙은 할아버지의 눈을 들여다보며 열 살 때 사랑에 빠진 소년을 찾아 보았다.

나는 말했다, "이름이 앨마인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그의 입술이 떨렸다. 나는 그가 이해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름이 앨마 메러민스키인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할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 팔을 두 번 두드렸다. 할아버지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이름이 앨마 메러민스키이고 미국으로 떠난 소녀를 사랑한 적이 있나요?"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는 내 팔을 두 번 두드리더니 다시 두 번 두드렸다.

나는 말했다. "아버지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그 아들, 그 사람 이름이 아이작 모리츠인가요?"

372p.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다시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나를 두 번 두드렸다.

왼쪽의 레오와 오른쪽의 작은 앨마. 책이 덮이면 그렇게 서로를 관통하고 하나가 된다. 레오가 평생 바라왔던 그 염원이, 지금껏 혼자 자신만의 사랑의 역사를 써내려 갔던 레오가, 자신이 사랑했던 그 이름을 가진 앨마를 통해 완성하였으면 한다. 평생 다하고 싶었던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부디 질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모두가 사랑의 슬픔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기를. 그것 또한 사랑의 역사 일부일 테니까.